<p>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 목판본·필사본·활자본. 활자본 <강상련 江上蓮>(1912)은 이해조(李海朝)가 신소설로 개작한 것이다. 수십 종의 이본이 있는데 이들 중 성격이 뚜렷이 구별되는 것이 경판본(京板本)계열과 완판본(完板本)계열이다. 경판본은 판소리와 관계가 없이 설화가 소설화된 작품이며 완판본은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정착된 작품이다. 경판본으로는 한남서림(翰南書林)본 대영박물관 소장본 송동(宋洞)본 안성본 등이 있고 완판본은 6종이 있는데 이들은 내용은 물론 판형·장·행·자수(字數)·자위(字位)까지 동
홍길동전 (한국고전소설)
✍ Scribed by 허균
- Publisher
- 유페이퍼
- Year
- 2015
- Tongue
- Korean
- Category
- Fiction
No coin nor oath required. For personal study only.
✦ Synopsis
조선 중기에 허균(許筠)이 지었다고 전하는 고전소설.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기록은 이식(李植)의 ≪택당집 澤堂集≫ 별집(別集) 권15 <산록 散錄>에 전한다. 이를 근거로 하여 허균을 <홍길동전>의 작자로 여겨왔다. 그러나 ≪택당집≫의 기록은 이식의 사후(死後) 송시열(宋時烈)이 교정(校正)·편찬(編纂)한 것이어서 그 신빙성이 떨어지며 허균이 처형될 때의 죄목에 이 작품을 지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 아닐 것이라는 의문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허균은 <엄처사전 嚴處士傳>·<손곡산인전 蓀谷山人傳>·<장산인전 張山人傳>·<남궁선생전 南宮先生傳>·<장생전 蔣生傳>과 같은 한문소설을 여러 편 지어 실존한 방외인(方外人)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또한 뛰어난 지략을 갖고 있는 인물이 등용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거나 백성들을 수탈하는 지방 수령들을 응징하는<홍길동전>의 주요한 내용은 허균의 생각이 압축되어 있는 <유재론 遺才論>·<호민론 豪民論> 등에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택당의 기록을 부정할 수 있는 실증 자료가 발견되지 않는 한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현재 전하는 <홍길동전>에는 17세기 말에 실재했던 인물인 장길산(張吉山)이 언급되는 등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그대로의 모습이 아닐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홍길동전>의 원본은 아직 발견된 바 없고 세부적인 내용과 표현에서 상호간에 차이가 있는 후대적 이본(異本)이 많이 전해온다. 판각본·필사본·활자본이 다 있다. 판각본에는 경판본과 안성판본 완판본이 있다. 경판으로는 야동본(30장)·한남서림본(24장)·어청교본(23장)·송동본(21장) 4종이 있으며 안성판으로는 23장본·19장본 2종이 전한다. 이 외에 완판 36장본이 있다. 필사본으로는 89장본과 86장본 52장본 21장본이 있으며 한문 필사본으로는 <위도왕전 韋島王傳>이 유일하다. 활자본으로는 회동서관·덕흥서림 등에서 간행한 것이 다수 전한다. 이들 이본은 다시 경판계열·완판계열·필사본계열로 나눌 수 있다. 경판계열에는 경판본 전부와 안성판본 및 필사 21장본이 완판계열에는 완판본과 필사 52장본이 필사본계열에는 한문본과 필사 89장본 필사 86장본이 각각 속한다. 현전 <홍길동전> 가운데 가장 오랜 최선본(最先本)은 경판 24장본의 제1장에서부터 제20장까지이며 원래의 <홍길동전>의 전체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경판 30장본이다. 완판본은 후대적 부연의 성격이 강한 이본으로 경판에서 서얼차별(庶孼差別)이라는 신분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과 달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과 비판의식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필사 89장본은 내용이 가장 풍부한 이본이며 한문본은 지금까지 발견된 유일본으로 국문본을 번역한 것이다. <홍길동전>이 형성된 배경으로 <수호전 水滸傳>·<서유기 西遊記> 등 중국소설과의 영향관계가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부분적인 삽화나 인물유형의 공통성은 인정되지만 두 작품 사이의 전반적이고 직접적인 영향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에 따라 연산군(燕山君)대의 홍길동(洪吉同) 명종(明宗)대의 임꺽정(林巨正) 선조(宣祖)대의 이몽학(李夢鶴) 광해군(光海君)대의 칠서(七庶) 등 국내의 역사 사실에서 <홍길동전>의 사건 인물 형성의 배경을 추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국내적 형성배경으로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실재 인물 홍길동의 전(傳)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홍길동은 조선조 세종 때 서울에 사는 홍판서의 시비 춘섬의 소생인 서자(庶子)이다. 길동은 어려서부터 도술을 익히고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될 기상을 보였으나 천생(賤生)인 탓으로 호부호형(呼父呼兄)하지 못하는 한을 품는다. 가족들은 길동의 비범한 재주가 장래에 화근(禍根)이 될까 두려워하여 자객을 시켜 길동을 없애려고 한다. 길동은 위기에서 벗어나자 집을 나서 방랑의 길을 떠나 도적의 두목이 된다. 길동은 기이한 계책으로 해인사(海印寺)의 보물을 탈취하였으며 그 뒤로 활빈당(活貧黨)이라 자처하고 기계(奇計)와 도술로써 팔도 수령들의 불의(不義)의 재물을 탈취하여 빈민에게 나누어주고 백성의 재물은 추호(秋毫)도 다치지 않는다. 길동이 함경도 감영의 재물을 탈취해가자 함경 감사가 조정에 장계(狀啓)를 올려 좌·우포청으로 하여금 홍길동이라는 대적(大賊)을 잡게 한다. 이에 우포장 이흡(李洽)이 길동을 잡으러 나섰으나 우롱만 당하고 만다. 국왕이 길동을 잡으라는 체포령을 전국에 내렸으나 호풍환우(呼風喚雨)하고 둔갑장신(遁甲藏身)하는 초인간적인 길동의 도술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조정에서는 홍판서를 시켜 회유하고 길동의 형인 인형도 가세하여 길동의 소원대로 병조판서를 제수한다. 길동은 서울에 올라와 병조판서가 된다. 그 뒤 길동은 고국을 떠나 남경(南京)으로 가다가 산수가 수려한 율도국(?島國)을 발견한다. 요괴를 퇴치하여 볼모로 잡혀온 미녀를 구하고 율도국왕이 된다. 마침 아버지가 죽자 부음(訃音)을 듣고 고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삼년상을 마치고 다시 율도국으로 돌아가 나라를 잘 다스린다. <홍길동전>은 16세기 이후 빈번해지던 농민봉기와 그것을 주도했던 인간상에 대한 구비전승을 근간으로 하고 그 현실적 패배와 좌절을 승리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민중의 꿈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후반부가 허구적으로 첨가되었다고 추정된다. <홍길동전>은 문제의식이 아주 강한 작품이다. 사회문제를 다루면서 지배 이념과 지배 질서를 공격하고 비판하는 방향에서 다루었으므로 문제의식이 뚜렷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지배 이념에 맹종하고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면서 무수히 쏟아져 나온 흥미본위의 상업적 소설과는 본질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당대 현실에 실재했던 사회적인 문제점을 왜곡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면에서 이 작품은 사실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경향을 지니며 적서차별 등의 신분적 불평등을 내포한 중세사회는 마땅히 개혁되어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지닌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역사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홍길동전>은 작품 경향 사회의식 역사의식에 있어서 <금오신화>에서 마련된 현실주의적 경향 강렬한 사회 비판적 성격 진보적인 역사의식을 이어받아 후대의 연암소설(燕巖小說)과 판소리계 소설 등의 작품으로 넘겨주는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소설사적 의의를 가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홍길동전 [洪吉童傳]
📜 SIMILAR VOLUMES
<p>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필사본. 국립도서관본·가람문고본·김기동(金起東) 소장본 등 3종이 있다. 그밖에 김영석이 1947년 개작하여 협동문고로 간행한 <이춘풍전>이 있고 '부인관찰사'라는 표제의 활자본이 있다. 숙종 때 서울에 사는 이춘풍은 가정은 돌보지 않고 놀러다니며 가산을 탕진한다. 나중에는 아내가 품을 팔아 모은 돈까지 다 없애고 빚까지 진다. 박득만이라는 상인이 돈을 써서 벼슬을 사려고 한다는 소식을 얻어 듣고서 최참판에게 다리를 놓겠다고 찾아갔으나 용돈도 못 얻고 술대접만 받고 돌아온다. 춘풍은 돈이 떨어지자
<p>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구활자본. 판소리로 불리어진 <배비장타령 裵裨將打令>이 소설화된 작품이다. 판소리 열두마당에 속하지만 고종 때 신재효(申在孝)가 판소리 사설을 여섯마당으로 정착시킬 때 빠진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배비장타령>은 판소리로서의 생명을 잃어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런데 신재효가 창작한 것으로 보이는 <오섬가 烏蟾歌>에 <배비장전>의 한 부분인 애랑과 정비장의 이별 장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또 배비장이 애랑에게 조롱당하는 사실이 서술되어 있기도 하다
<p>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목판본·활자본. 조선 인조 때의 명장 임경업의 일생을 작품화한 한글소설로서 '님장군전'·'림경업전' 등의 이칭이 있다. 전하는 판본으로는 목판본 3종과 활자본이 있다. 목판본 모두 경판본 <님장군젼>으로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27장본 일본 도요문고(東洋文庫)에 소장된 21장본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舊 金東旭 소장본)에 소장된 16장본이 있고 활자본은 세창서관에서 간행된 <임경업전>이 있다. 목판본과 활자본은 전체적인 내용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으나 활자본은 뒤에 이루어진 임
<p>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본. 목판본이나 필사본은 발견되지 않고 활자본으로 대창서원본(大昌書院本 1919)·태화서관본(太華書館本 1928) 등이 전하고 있다. 조선 중엽 전라도 전주 부근에 사는 퇴리(退吏) 최만춘은 아내 조씨와 혼인한 지 10년 만에 콩쥐라는 딸을 두었다. 그러나 콩쥐가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조씨가 세상을 떠나자 최만춘은 과부 배씨를 후처로 맞아들였다. 계모는 자기의 소생인 팥쥐만을 감싸고 전처소생인 콩쥐를 몹시 학대하였다. 산비탈의 돌밭매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베 짜고 곡식 찧기 등의 어
<p>조선 숙종 때 김만중(金萬重)이 지은 고전소설. 조선 숙종 때 김만중(金萬重)이 지은 고전소설. 이본에 따라 1책부터 4책까지 분량이 다양하다. 1725년(乙巳年 영조 1)에 간행된 금성판(錦城板) 한문목판본을 비롯하여 국문방각본·국문필사본·국문활자본·한문필사본·한문현토본 등 50여종이 넘는 많은 이본이 전한다. 김만중은 노론 벌열층(閥閱層)의 일원이라는 자신의 처지에 어울리지 않게 당시로서는 이단시되던 불교나 패서(稗書) 등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이러한 점이 소설을 지을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고 생각된다. 작자의 종손인 춘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