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조선의 미술은 정제성이다. 예를 들어 경주 석굴암을 들더라도 건축적 양태, 그것은 정제되어 있으나 그곳에 있는 조각은 팔부중(八部衆)의 변변치 않음에서 완전 정제를 이루지 못하였다. 도자(陶磁)공예에서 예를 들면 기물(器物)의 형태가 원형적 정제성을 갖지 않고 왜곡된 파형(跛形)을 많이 이루고 있다. 이곳의 형태가 형태로서의 완전형태를 갖지 않고 음악적 율동성을 띠게 된 것이다.<본문 중에서>
조선의 고인돌
✍ Scribed by 손진태
- Publisher
- 온이퍼브
- Year
- 2018
- Tongue
- Korean
- Category
- Library
No coin nor oath required. For personal study only.
✦ Synopsis
《조선의 고인돌》은 1934년 우리나라 초기 거석문화 'Dolmen(고인돌)'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기술한 글이다. 조선 민속자료에 관련하여 고인돌에 대한 우리나라 처음이라 할 수 있는 소론이다.
1934년 『조선 돌멘(Dolmen) 고(考)』라는 주제로〈개벽〉에 기고한 것으로 일제강점기 조선(특히 북한지역)에서 발견된 초기 고인돌의 실증적 채집 관련 자료와 몸소 경험한 것 등, 외국인들이 기술한 조선 관련 거석문화 자료의 실례를 들어 정리하였다. 저자는 셀 수 없이 도처에 흩어져 있던 과거 우리 거석문화의 토대와 보고 들은 역사 문화의 기초를 정립하고 입증하려 하였다.
본문은 해제와 주해를 덧붙였으며 간략하나마 우리나라 고인돌 문화의 발자취를 정리하고 고찰하는 자료가 되었으면 합니다.
✦ Subjects
History; Nonfiction; HIS000000
📜 SIMILAR VOLUMES
<p>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구법(求法), 무역, 외교 등의 목적으로 해외로 나간 우리 조상이 많았다. 인도에 구법 여행을 떠난 혜초는 신라로 돌아오지 않고 당나라에서 여생을 마쳤다. 혜초의〈왕오천축국전〉에는 인도에 온 고구려, 백제, 신라의 승려가 매우 많았음을 전한다. 고려시대에도 국제무역 등으로 외국과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엄격한 쇄국 정책을 편 조선 시대에는 중국과 일본으로 보내는 사신 이외에는 외국 여행을 한 이가 거의 없었다(풍랑으로 중국에 표류한 이의 기록이 2개 정도 남아 있다).<p>1876년 일본과 새로
<p>• 원제 〈조선과 그 예술(朝鮮とその芸術〉(1922년) 중 '조선의 미술(朝鮮の美術)'법륭사(法隆寺) 금당(金堂)을 장식한 가장 훌륭한 불상은 오늘날 '백제의 관음(觀音)'으로 불리는 것이 아닌가?오랜 세월 비밀히 전해 내려온 몽전(夢殿)(법륭사 동원東院의 정당正堂)의 같은 관음입상(觀音立像)은 그 양식으로나 그 미적 감각으로 보아 영락없는 조선의 작품이다.일본의 다기(茶器)는 남부 조선에서 만든 일상적 다기(茶器)의 여운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민족은 그들의 예술에 자신을 진솔하게
<p>신화는 곧 원시 인민의 종교요 철학이요 과학이요 예술이요 역사입니다. 아니, 이 모든 것이 아직 따로따로 분과(分科)되지 아니한 상태로 있는 인류 지식 전체의 최고 표현인 것입니다. 근세에 이르러 학문의 방법이 진보 하고 부면(部面)의 확대됨과 한 가지 인류의 아이 때 생활 사실이 비로소 그 면모를 나타내게 된 것은 누구나 아는 바와 같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체로나 부분으로나 모두 다 신화로써 시작합니다. 어느 국민의 역사든지 그 초두에 적혀 있는 사실은 죄다 신화요, 그렇지 않으면 신화로서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나온 의장